신문방송칼럼
설에 대한 묵상
새벽을여는교회 최성은 목사
며칠 후면 설입니다. 설은 추석과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명절로 해가 새롭게 시작된다는 뜻의 ‘설다’, ‘낯설다’, ‘익숙하지 못하다’라는 의미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설날은 우여곡절을 겪어 한때는 음력설을 없애고 양력설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전히 음력설에 차례를 지내는 전통을 유지했기 때문에 1985년 이후에는 양력설과 음력설을 모두 지내고 있습니다.
지금은 많이 희석되었지만, 설날은 가족과 친지들이 모여서 차례를 지내고 세배하고 떡국 등 맛있는 음식을 먹고 덕담을 나누는 잔칫날이었습니다. 특히, 조상에게 제사 드리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해서 설날 전날이면 여인들은 날을 세워가며 제사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그 때는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불효막심한 사람’이라고 낙인찍혔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명절을 보면, 연휴에 맞추어 해외 여행가는 여행 족들이나 휴가를 가거나 자식들이 고향에 내려오지 않고 부모들이 역으로 자식 집에서 지내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조상에게 제사 드리지 않으면 조상들의 보살핌이 없어서 가정이 풍비박산날 것 같은 풍토였는데 지금은 오히려 명절을 휴가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더군다나 이번 설날은 대체 공휴일이어서 사흘 동안 쉼으로 여행 족들은 더 늘어날 것 같습니다.
복음이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제사문제였습니다. 성경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죽으면 천국에 가고 믿지 않고 죽으면 지옥에 간다고 말씀합니다. 죽은 사람이 다시 세상에 올 수 없으니 살아있는 부모를 잘 공경하고 섬기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제사는 죽은 조상을 섬기는 것으로 죽은 후에 부모에게 효를 표하는 의식입니다. 다시 말하면 제사는 귀신을 숭배하는 것으로 복음의 진리와 상충되었던 것입니다.
제사가 부모에게 효를 표하는 것이냐 우상 숭배하는 것이냐는 질문은 지금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우리는 이에 대한 대답을 사람의 도리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찾아야합니다. 성경은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 (고린도전서 10:18~21).’고 말씀합니다. 제사는 분명한 우상숭배인 것입니다.
초기 믿음의 선배들은 제사 문제로 많은 고초와 고난을 당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조상들의 신주를 태우고 제사를 폐지하는 일이 생겼고, 이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아 제사를 폐지하면 가족공동체에서 추방당하거나 많은 박해를 받았습니다. 사회적으로는 기독교는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는 종교라며 배척당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효(孝)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은 부모에게 순종할 것을 명령하셨고(엡6:2), 부모님을 공경치 않으면 저주를 받거나 돌로 쳐서 죽이라고 말씀하십니다(출21:17). 또한 부모님께 순종하고 공경하면 만사가 잘되고 장수의 복을 주신다고 약속(출20:12, 3절)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언제부터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을까요?
우리나라에 제사가 들어온 것은 조선시대입니다. 조선을 건국하면서 이성계는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불교를 배척하고 유교를 받아들였습니다. 고려와 새로운 왕조 조선과 무엇인가 차이가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러한 조치는 유교에서 강조하는 조상을 섬기는 일을 우선순위에 두었습니다.
종묘(宗廟)는 조선 왕조의 역대 제왕들과 왕후들의 신주를 모시고 제례를 봉행하는 유교 사당입니다. 역대 왕들이 모셔져있는 곳이니 그 위엄은 대단합니다. 왕들은 자신의 권력이 조상들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종묘에서 장엄하게 제사를 지냈습니다. 이것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권위였습니다. 조선시대 제사는 양반들의 전유물로 그들의 우월함을 나타내기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 이후 신분제가 붕괴되고 양반들의 전유물이었던 제사가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화되었습니다. 누구나 할 것 없이 양반들의 흉내를 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제사는 중국에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중국은 공산혁명이후 대부분의 가정이 일 년에 단 한번 차례 제사를 지낸다고 하니 참 어이없는 일입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발표한 ‘2015 한국의 성인지 통계’에 따르면 13세 이상 3만7000명에게 부모 부양에 대한 견해를 물었더니 ‘부모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응답은 2002년(9.6%)에서 2014년 16.6%로, 반면 ‘가족이 책임져야 한다’는 응답은 같은 기간 70.7%에서 31.7%로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고 합니다. 부모의 노후 생계는 부모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인식과 더불어 독거노인이나 캥거루족의 증가, 노인 구타 등의 사회문제를 돌아볼 때,
이번 설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조상에 대한 효보다 살아있는 부모에게 잘하라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실천할 때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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