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방송칼럼
그리스도인!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살아가다보면 누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체계와 사상에 영향을 받고 사는 것이 현실입니다. 자기 가치관(價値觀)이 분명하지 않으면 이에 휩쓸려 자기모순에 빠져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세상의 가치체계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되는데 하나는 인본주의(人本主義) 가치관이고 다른 하나는 신본주의(神本主義) 가치관입니다.
인본주의는 말 그대로 사람이 우주의 주재(主宰)가 되며 우주적 중심이 된다는 사상입니다. 여기에는 신이나 자연이 숭배 대상이 아니라 오직 인간이 중요시되는 실증주의 사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본주의는 하나님이 모든 것의 근본이 되심을 인정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유일한 주인으로 삼아 펼치는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인생을 사느냐는 중요합니다. 인생의 목적과 방향이 결정되고 살아가는 방법에 차이가 있으며 인생의 결국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신본주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삶의 모양은 어떨까요?
이번 대선에서 대선 주자들의 토론 중에서 동성애에 대한 토론 내용이 있었습니다. 세계적으로 동성애는 인권과 평등, 소외된 약자를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 세계 여러 나라에서 동성애를 인정해나가고 있는 실정이고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동성애를 인정하라는 차별법이 국회에 여러 번 상정되었습니다. 그리고 사회적으로도 어느 정도는 묵시적 인정이 이루어지고 있기도 합니다.
저는 과연 대선주자들은 동성애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고 특히, 이번 대선이 우리나라에 미칠 영향력이 커서 주의 깊게 경청했는데, 당선이 유력시 되는 주자의 견해는 ‘차별을 금지하는 것과 동성애 합법화는 다르다’며 ‘동성애 합법화에 찬성하지 않는다.’고 의견을 필역해서 그나마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성애가 기독교에서 뜨거운 감자로 등장한 것은 ‘차별금지법’ 때문입니다. 서구에서 차별금지법이 통과되어 강단에서 제대로 복음을 선포할 수 없음을 알고 우리나라에 차별금지법이 국회에 상정된 것을 알고 이를 막아서고 부터입니다.
차별금지법은 합리적 이유 없이 성별, 장애, 병력, 나이, 국가, 민족, 인종, 피부색, 언어 등을 이유로 고용이나 교육기관의 교육 및 직업훈련 등에서 차별을 받지 않도록 하고 있는 내용의 법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동성애자들은 자신들이 성적 소수라며 사회적으로 차별을 받고 있으니 차별을 받지 않도록 해달라고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의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태어났을 때부터 동성애 기질을 가지고 태어났으니, 이성애자와 다르니 동성애를 차별 없이 사회적으로 받아줄 것을 제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주장을 많은 사람들은 인권이라는 이름아래 받아들이고 타 종교에 비해 그 수는 떨어지지만 기독교인조차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거 아냐?’라며 ‘소수인데 뭘’이라는 생각으로 동성애를 찬성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동성애는 유전적 요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후천적이라는 것이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서 발표되어왔습니다.
그리고 국가인원위원회의 자료에 따르면 2001년에서 2016년까지 15년 동안 ‘차별 진정 사건’ 중에서 ‘성적 지향’에 대한 차별은 0.3%에 지나지 않았고, 가장 많은 차별은 ‘장애’ 라는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우리나라에 차별의 심각한 문제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나타나지 성적 소수자에게는 차별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오히려 차별법이 제정되면 오히려 일반 국민들이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반인권적 법이 될 수 있습니다. 법무법인의 아이앤에스의 조영길 변호사는 현행법으로도 얼마든지 동성애자들의 인권을 보호해 줄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비단 동성애 문제뿐만 아니라, 가치관이 확실하지 않으면 세상적인 유혹에 흔들리기 쉬운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세대의 문화는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문화가 아니라 상부에서 하부로 내려오는 문화, 법이 제정되고 그 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구조입니다. 사회 모든 면에서 깨어있지 않으면 나도 모르는 새에 새로운 법들이 만들어지고 그 틀 안에서 살아가야한다는 것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이나 뉴에이지, 네오마르크스주의, 종교다원주의 같은 사상들이 우리주변을 둘러싸고 이를 옹호하는 집단에 의해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사회문화가 편성되어갑니다. 이들 사상의 바탕은 완전히 인본주의 사상에 기초합니다.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 된다는 사상은 멋있어 보입니다. 그러기에 누구도 소외될 수 없다는 생각은 이상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 배후가 사단임을 깨달아야합니다. 하나님을 하나님 되지 못하도록, 인간도 신이 될 수 있다는 사고를 조장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신본주의 가치관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불가피하게 이 둘은 충돌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시대에 더욱 깨어있는 사람들이 되어야합니다. 울며 삼킬 자를 찾아다니는 사단 앞에 의로운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어야합니다. 의롭다는 것은 자신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하나님의 기쁨을 선택하는 것을 말합니다. 삶에서 다소 불편하고 힘들지만, 재미있고 자유로운 삶을 살기보다 하나님의 기쁨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나의 죄를 지적하고 기억나게 합니다. 때로는 말씀이 거추장스럽고 버거울 때도 있고, 속박 받는 것 같다고 갈등할 때도 있고, 말씀을 거부하고 싶을 때도, 말씀으로 인해 아플 때도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하나님의 기쁨을 선택하는 것이 의로운 삶입니다. 그리고 이런 삶이 바로 신본주의에 근거한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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